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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AN 하나된 진량 수출백억불달성 우리손으로 진량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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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및 유래

본읍은 신라 때 마진량현(麻珍良縣)이었는데 경덕왕 16년(757)에 여량현(餘良縣)으로 고쳐 오늘날의 경산인 장산군(獐山郡)의 속현이 된다. 그 뒤 강등이 되어 구사부곡(仇史部曲)으로 불리었으며, 고려 현종때 자인현과 함께 경주부의 속현으로 되었다. 조선조 인조때(1637) 자인 사람 전우벽(田禹闢)의 상소에 따라서 경주부로부터 자인현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조 때 본 읍은 하양현과 자인현에 속했었다. 1909년 영천군 창수면 평사동이 자인군 하북면에 편입되었고, 하양군 중림면 아사리도 하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자인군 중북면 일부와 하북면, 그리고 하양군 낙산면과 중림면을 통합하여 진량면으로 개편하여 1997년 11월 1일 진량읍으로 승격되었다.

현재의 진량읍은 4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면적은 46.18평방킬로미터로써 경산시의 11퍼센트이다. 행정 구역은 52리 388반으로 되어있다.

진량은 경산의 2읍 6면 7동의 하나로서 이름으로라면 정말로 끝내주는 고장이다. 진실로 귀한 것은 사람이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 때만 하여도 진량은 하양군의 한 지역이었다.

두락산(斗落山)의 이름에서 락(落)을 뜻 좋은 글자로 고쳐서 즐거울 락(樂)자로 고친 뒤에 낙산면(樂山面)이라고 하여 두인(斗印), 동자(童子), 선항(仙巷), 화전(花田), 내상(內上), 내하(內下), 신기(新基), 북동(北洞), 회동(會洞), 봉동(鳳洞), 보인(甫仁)등의 11개 마을로 이루어진 고장이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군과 면을 통합하였으니 이 때에 진량이란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낙산면으로 하였다가 진량으로 하였는데 그럴만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왜 갑자기 진량이 되었단 말인가. 옛부터 고을을 다스리던 현청이 있었다고 하여서 붙여진 현내리(縣內里)가 있었다. 지금도 청터배미라고 하는 것을 보면 현감이 거처하던 현청이 있었음을 가늠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현청의 안쪽이라고 하여 현내리가 되었을 터. 같은 맥락에서 보면 청터배미에서 얼마 아니 되는 곳에 여청골이 있음 또한 한 방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때에는 현내리 마을이 마진량현(麻珍良縣)이었다 하여 현안 곧 현내가 되어 지금껏 쓰이는 걸로 상정할 수가 있다. 오늘날의 진량의 마진량에서 '마(麻)'를 빼고 나머지 진량을 이 고장의 이름을 삼은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본디의 이름인 마진량이란 무슨 뜻인가. 이는 필시 우리말식 곧 이두식으로 읽어야 옳을 것으로 본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소리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뜻 중심으로 읽는 방법이 그것이다. 한자의 소리를 빌어다가 읽은 경우를 생각하여 보면, 마진량-마달로 풀 수 있다. 마달은 무엇인가. 미루어 보건대 마달을 맏들로 보면 어떨까 하는 점이다. 앞의 '맏'은 크다 혹은 으뜸 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으며, 여기서 뒤의 '달'은 성·읍에 해당하는 의미로 새기면 좋을 듯하다. 그러니까 큰들 혹은 으뜸들의 의미를 드러냄으로 볼 개연성이 있다. 보배 진은 본디 달 진(珍)으로 읽었으니까 예전에는 달 혹은 들로 읽었을 것이다. 아니면 앞에 나오는 '마'를 소리대로 읽는 경우라 하겠다.

하면 '마'는 무엇일까. "삼국유사"의 '서동요'에 나오는바, '마'는 먹거리로서의 마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다시 먹거리 '마'를 생산하는 들로 새겨서 무방할 것이다. 한편 한자의 뜻을 중심으로 읽을 경우는 어찌 되는가. 마(麻)는 삼베를 가리키니 마진-베들이란 대응이 이루어진다. 베-벼로 볼 때 결국 마진량은 벼를 많이 생산하는 으뜸들판이란 말이 됨을 추정해 볼 수가 있다.

이 고장에 옛날 압독국(押督國) 같은 나라가 있었음을 떠올리면 압독의 먹거리를 생산하던 곡창으로서의 그 기능을 짐작할 수가 있지 아니한가. 아니면 말 그대로 옷감으로서 삼베를 기르던 곳이었든지 어느쪽으로 보더라도 생산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틀림이 없다.

오늘날 이 고장에 대학이 들어서고 경산1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 국가의 산업을 일으키는 곳일진대, 먹고 사는 것과 깊은 상관성이 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다문과 장천이 합하여져 이루어진 문천지(文川池)에는 밤마다 무수한 별꽃의 전설이 때만되면 안개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 보배로운 앞날의 꿈을 안고서.

저자 대구대학교 정호완교수

  • 담당부서 : 진량읍
  • 최종수정일 :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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