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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AN 活氣(활기)찬 새河陽(하양) 하양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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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및 유래

고려초에는 하주(河州)라 하였다가 현종 9년(1018)에 하양으로 개칭하고 현(縣)이 되었으며 뒤에 경주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선조 34년(1600)에 대구부에 이속되었으나 숙종 때에 다시 현으로 되어 한사동(翰沙洞) 관아를 세웠고 영조 때(1742)에 이르러 이를 금락리(琴樂里)로 옮기고 화성현(花珹縣)이라 부르게 된다.

고종 32년(1895)에 하양군이 되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합할 때에 경산군에 편입되어 하양면이 되었다가 1973년에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금호강이 용두머리로 감도는 들에 하늘의 뜻이 있어 꽃다운성 화성(花珹)을 점지하셨음인가. 철 따라서 하염없는 능금꽃이며 대추꽃 향내음에 싸여 팔공산의 기상이 한층 속인의 경지를 벗어난 듯이 보인다.

고려시대의 본디 이름은 하주(河州)였다. 또달리 꽃 화(花)자 화성이라고도 부른다. 물 하(河)자 하주와 꽃 화(花)자 화성은 무슨 걸림이 있을까. 물이 흐르는 곳에 사람들의 모꼬지가 이루어지기 마련. 팔공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신령쪽에서, 한편으론 영천의 모자산(母子山 일명 普賢山)에서 흐르는 물이 함께 모여 금호강을 이루나니. 물과 물 사이에서 쌓이는 흙들이 어울어서 꽃송이 같은 땅-꽃성(花城)을 빚어낸다. 꽃은 옛말로 곶(곶)이었다. 장기곶에서와 같이 바다로 땅이 불쑥 튀어나온 곳을 일컬음과 마찬가지이다.

꽃이 피면 그 자리에 열매가 달림은 물론이요, 이로 말미암아서 많은 삶의 가능성을 일구어 낸다. 물이 흐르다가 이루어진 터전에 먹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생사의 리듬이 물결처럼 여울져 간다. 해서 세월을 따라 마을이 이루어졌으니 이름하여 화성(花城)-꽃성이라 했다.

하양(河陽)이라. 땅이름의 끝이 붙는 -양(陽)은 거의가 물의 북쪽을 이른다. 그러니까 하양은 금호강이 굽이쳐 휘돌아 가는 곳의 북쪽 녘에 자리한 삶터란 말이 된다. 마치 "용비어천가"에서처럼 한양이 한강의 북쪽에 있는 고을이라 함과 같다고나 할까. 하양의 서북쪽으로는 팔공산의 하늘에 닿아 있고 가까이는 무락산이며 초례산(醮禮山)이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울타리산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초례란 본디 밤하늘의 별에다 제사를 모심을 이른다. 저해오기로는 고려 태조 왕건이 불꽃 튀는 도화사 싸움에서 견훤을 물리치고서 이산에 올라 하늘에 제(祭)를 올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것이다.

독립항생의 상징이라고 할 허병률(許秉律) 의사의 기념비가 지는 노을에 외롭다. 무심하게 흘러 가는 금호강은 꽃성의 머리를 감싸안으며 붉디 붉은 장미꽃이 그 앞에 향을 사른다. 꽃다운 삶을 살았다고.

저자 대구대학교 정호완교수

  • 담당부서 : 하양읍
  • 최종수정일 : 201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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